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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삶을 살아가는 여러 이야기들(치과와 중고차 차량 폐차)

안녕하세요!
행복한 자동차 박세종 부장입니다

11. 9. 6(화) 09:30분

story 1) 치과를 다녀 오며

오전에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2개월전 부터 우측 어금니 임플란트 치과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며칠전 부터는 왼쪽의 어금니가 약해지고, 염증이 있어서 신경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원장님은 '우측도 임플란트 진행하고 있으니, 불편하시더라도 왼쪽 어금니로 음식을
드실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드셔야 합니다'
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 이른 아침의 가을 풍경과 백일홍이 아름다워 사진에 남겼습니다)

그러던 중 점심 식사를 하다가 딱딱한 뼈가 치아를 정확히 부딪히면서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되어 치과를 찾아가 진단을 받게 되었는데, 왼쪽 치아를 발치(拔齒)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측 임플란트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취와 발치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피해가고
싶었는데,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셔서 오전에 가서 왼쪽 어금니 치아를 발치하고 왔습니다  

치아상담을 받은 지난 11.9. 1(목) 부터 치아를 발치한 9. 6(화) 까지 예약 순번기다리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장님이 조심해서 음식섭취하라고 할 때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이럴 정도 였다면, 치과에서 좀 더 강하게 주의를 주셨다면 좀 더 조심했을텐데...'
'발치하기전까지 치아가 갑자기 호전되어서 발치안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시면 좋을텐데..'
'아! 그 통증을 어떻게 견디지?'
등 등


치과에 들러 순번을 기다리다가, 원장님의 최종 결정이 난 후에야 어쩔 수 없는 저의 운명(?)임을 알았습니다

원장님은 치아에 마취를 하고, 발치를 하기 위해 얼굴에 수건을 가린후 준비하느라
몇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얼굴수건을 둘러 쓰고 있는 동안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 얼마전 임플란트 치료를 받았을때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임플란트 치료를 받았을때, 참 힘들었습니다
마취를 하고, 임플란트 나사(용어를 잘 몰라서 제 나름대로 기록합니다)를 박았습니다
많은 통증이 있었지만 '이제 끝났습니다'라고 하셔서 귀가 했는데,
1시간후에 다시 치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치과 : 정말 죄송한데,  다시 한번 치과에 오실 수 있으세요?
박부장 : 왜요? 다 끝나지 않았나요?
치과 : 죄송한데, 치아 사진을 확인했는데 나사가 잘 박히지 않아서 다시 해야 해서요
박부장 : 예? 그럼 그때 말씀하셨어야죠! 다 끝난 줄 알고 안심했는데..

다시 치과에 들러 임플란트 나사를 뺀후 , 재차 더 깊이 박었습니다

그렇게 참기 힘들정도로 임플란트 작업을 했었습니다
한달여가 지난 지금은 그런 아픈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지금은 임플란트 치아를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치아치료의 고통은 순간이지만, 고통을 잘 견디고 나니
더 튼튼한 치아를 갖게 되었고, 음식물 섭취도 편해졌습니다

제가 치아를 잘 관리하지 못해서 어쩔수 없이 발치를 하게 되었지만,
이후 치아치료를 통해서 더 강해지고, 튼튼해질 저의 치아를 생각하니
수건은 덮어져 있었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2) 저 보다 더 고통가운데 살아가시는 많은 분들이 떠 올랐습니다
    그 동안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주변분들의 아픔을 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 엄살이 심한 편이고, 겁도 참 많은 편입니다

주변 분들중엔 뇌를 수술하신 분도 계시고, 복부를 절단해서 수술하신 분도 계시며,
종양으로 매일 투석하시며, 투병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가까운 후배는 건강이 좋지 않을때면 스스로 팔에 주사를 놓으면서
투석을 하기도 하더군요

일제시대때에 주기철 목사님은 '천왕황숭배를 하지 않기 위해 날카로운 못 위를 맨발로 걷는 고통'을
감수하시기도 하시고, 조선시대때의 사육신은 불고문, 채찍질, 살가죽을 벗기는 고통속에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고, 목숨과 바꾼 위인들이 부지기 수였습니다

한낱 발치(拔齒)를 하면서
그 분들을 생각했다는 것이 참 부끄러운 생각, 부끄러운 비교인 것 같네요

고통은 사람의 힘만으로, 사람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더 큰 시련이 올 때에
제가 알지 못하는 더 큰 능력과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건에 덮혀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발치에 대한 두려움이
한층 없어졌고, 무사히 발치치료를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3) 치아 치료를 마치고 돌아 오며 참 감사한 또 한가지!
    마취제가 있어 그나마 통증이 많이 없다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중고차 매장으로 돌아가 저의 업무에 임했습니다


story 2) JDM 선교회 간사님의 차량을 폐차하며

오전에는 H 대학의 선교회 간사님(31세)이 중고차 매장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대학 후배가 소개를 해 주어서 몇 번의 전화통화상으로만 전화를 하다가
직접 만나 뵙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매장을 방문해 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JDM(Jesus Disciples Movement간사님은 매장을 방문해 주셨고, 오랜 동안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폐차하시기 위해 싼타모 차량을 가지고 오셔서 밝은 모습으로 사진을 담아 주셨네요)

대학을 졸업하신 후 대학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젊은 청년의 시기를 대학에서
자비량으로 봉사하시는 간사님의 삶에 존경을 표해 드립니다

대학에는 몇 개의 건전한 선교봉사 단체가 있습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 CCC 선교회, DFC 선교회, JDM 선교회, UBF 선교회, IVF 선교회 등이
활동하고 있는데, 위의 선교회들은 열정적이고, 모범이 되는 선교회 단체 들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선교회 간사님들은 누구를 의지 하지 않으시고, 아르바이트나 직장을 겸하면서 자비량(스스로 일하시며 가정을 꾸려 나가시는 분)을 하시며 수고 하시기에 저 또한 많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저 또한 대학생활을 하며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 봉사를 하며 신앙적으로 많이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간사님 : 안녕하세요! 부장님 전화통화만 그동안 드렸었네요
박부장 : 안녕하세요! 간사님! 전화만 드리는 것 보다는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간사님 : 현재 타고 있는 싼타모 차량은 폐차하고, 대학선교회에서 사용할 차량이 필요해서요
박부장 : 어떤 차량으로, 금액은 어느 정도면 되실런지요?
간사님 : 실은 이곳에 온 이유는 차량을 구입하려는 것 보다는 싼타모 차량을 먼저 폐차하려구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자꾸 시동이 꺼지고, 클러치는 말을 안 듣고 위험하기도 했네요 
박부장 : (차량을 살펴 보며) 정말 싼타모 차량이 충성을 다했네요
간사님 : 폐차비를 알아 보니 45-50만원까지 나오는 것 같은데, 그 가격에 해 주실 수 있나요?
박부장 : 잠시 기다려 보세요! 거래하는 폐차장에 연락해 보겠습니다(전화를 하고 나서)
            간사님! 그 가격에는 못 맞추어 드리겠는데요?
간사님 : 그러면 얼마까지?...
박부장 : 55만원까지 해 드릴 수 있다고 하네요
간사님 : 와! 정말이세요!
박부장 : 예! 아마도 폐차장에서 대학선교회에서 수고하시는 간사님을 특별히 배려해 주셔서 
            가격을 최고로 불러 주시는 것 같네요
간사님 : (무척 기뻐하시며) 정말 고맙습니다! 부장님! 한푼이라도 아껴야 할 형편이라서요
         새로 구입할 차량을 위해 학생들과 함께 알바를 하며 자금을 모으고 있는데, 모아지는데로
        부장님을 찾아 뵙겠습니다  

그리고, 간사님과 마음에 있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간사님은 연신 고마워 하시며 버스를 타고 출발하셨습니다

(*선교회 후원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연락주시면
   후원계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얼마후 절차를 밟아서 싼타모 차량을 폐차하게 되었고,
폐차장에서는 저의 계좌로 50만원을 송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간사님께 55만원을 송금해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자동차
박세종 부장 019 - 9765 - 6022